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수난기로서 국권은 피탈되고 제 27대 순종이 즉위 3년만에 퇴위를 강요당해야 했으며 궁중은 폐쇄되고 백성은 식민지의 굴욕과 수난을 강요당했다. 일제(日帝)가 넘보지 못할 만큼 부국강병(富國强兵)하지 못한 우리의 과실도 크지만, 우리 나라를 비롯한 거대한 아시아를 침탈할 야욕을 감춘 채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미명과 어느 민족도 요청하지 않은 해방이라는 가면을 쓰고 침탈의 만행을 미화시키거나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강변하는 현대 일본의 마수를 경계하고 민족 정기를 앙양하는 동시에 적절한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36년간의 일제 식민지 아래 민족 수난기의 음악은, 궁중 폐쇄에 따른 궁중 음악의 양식 변화, 정신적 질곡과 삶의 전도에 의해 문화 예술 향유에 대한 정서를 상실한 데서 오는 민간 음악의 침체, 그리고 한국인의 모임을 통해 얼과 의식을 육성하고 앙양하게 되는 굿, 특히 마을 굿을 미신이라 폄하시켜 금지시켰다. 한편,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음악이 유입되었으며, 전통문화 예술을 말살시키기 위해 서양 음악이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방관 내지 협조했던 것이 제국주의 일본의 정책이었다. 서양 음악의 유입은 한국 음악 문화의 큰 변동이다.